교육가 유일한

교육가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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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의 생애

 

교육가 유일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능력이 개발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잠재한 능력은 빛을 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교육 장학사업 측면에서도 유일한 박사는 기업 경영 못지않게 인재 양성을 중히 여겨왔다. 그 중에서도 그는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실감하였다. 그러던 중 1957년 사재로 소사에 고려공과학원을 설립하고 전체 학생에게 학비와 숙식비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기술인력 양성에 전념하였다.

1961년 학교 이름을 한국직업학원으로 고치고 1964년 3월에는 다시 한국고등기술학교로 바꾼 후 같은 해 12월에 영등포구 항동에 교사를 신축하고 유한공업고등학교로 새로이 발족하였다. 이 학교는 기계과, 전기과, 건축과, 자동차과 등을 설치하고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훌륭한 기술인력을 육성시켜 배출하고, 1967년부터는 유한중학교를 병설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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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를 아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는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교육사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인 휴전 직후에는 학비 면제와 무료 의식주 공급으로 빈민소년을 기능공으로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경제가 성장하여 생활수준이 향상된 단계에서는 정규 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자신의 교육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능한 인재와 기능공을 양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공업고등학교 설립에 정력을 쏟았던 것이다.

전체 학생이 장학금으로 공부한 유한공고는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정신하에 설립 운영되어 왔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유한전문대학도 설립되었다. 또한 유능한 인재를 기르기 위하여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금>(유한재단의 전신) 등 공익재단을 설치하여 교육 및 장학사업의 지원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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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교육이념은 고려공과학원의 경영에서 잘 나타나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보아 오랫동안 양반들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그들은 육체노동을 금기시하여 만약 양반이 기능공이 된다면 통혼을 하지 않을 정도로 천하게 생각하였다. 유일한 박사가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악습의 시정이었다. 그래서 빈민자제의 무상기술교육을 착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뛰어난 자질을 가진 민족이므로 기술교육을 시킨다면 장차 그들은 유능한 기능공이 되어 자립할 것이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여겨 이 분야의 투자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가 늘 주장하였던 바와 같이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기술교육을 일관하여 추진하였던 것이다.